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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과 상황 인터뷰 기사 (2006년 10월 26일, 복음과상황)

한국의 상황에서 중요한 덕목은 신중함
좌우를 넘어선 평화만들기, 평화연구원 윤영관 소장


[193호] 2006년 10월 26일 (목) 17:00:51
복음과상황 goscon@newsnjoy.co.kr


참여정부 외교정책의 초석을 놓은 윤영관 교수(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전 외교통상부 장관). 학자의 자리로 돌아와 학자로서의 삶에 전념해온 윤 교수는 올 해 말 출범하는 평화연구원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일할 꿈을 꾸고 있다. 양심에 따라 1970년대를 산 운동권 학생이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됐는지, 학자 그리고 정책담당자의 삶을 어떤 자세로 살아왔는지, 그리고 통일의 꿈을 꾸기까지 하나님이 어떤 손길로 인도하셨는지를 들어보았다. 김형원 편집위원장은 윤 교수에게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왔는지를 첫 질문으로 던졌다.


"대학교 다닐 때 운동권 학생이었습니다. 그때가 70년대 초반이니까 어려웠을 때죠. 어두운 시절에 시골에서 올라와서 이상주의적인 믿음에 영향을 받아서 학생운동을 했죠. 제가 믿은 것은 저 스스로였습니다. 나의 지적인 능력과 양심적인 기준으로도 충분히 모든 것을 잘 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살았으나 결국은 여러 가지 좌절을 겪었죠.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뜻대로 안 되었을 뿐 아니라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미래에 대한 뚜렷한 비전도 없었습니다."


"변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80년 5월 광주항쟁입니다. 군에서 제대할 무렵이었죠. 굉장한 충격이었어요. 사람에게 이상과 합리적 양식이라든가 도덕적 기준과 가치라는 게 있는데 그런 것들이 무너져 가는구나, 아무리 신념에 불타서 열심히 뛰어 다녀도 그걸 여지없이 비웃는 것처럼 현실은 최소한의 나의 기대를 배반하는구나, 그때까지 믿어왔던 존재의 기반이 무너져 내리고, 내가 나를 믿고 사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죠. 제대하고 그렇게 방황하다가 집사람을 만나서 신앙을 갖게 됐습니다."


"그 뒤 미국에 유학을 가서 교민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죠. 10년 가까이 공부를 하고 가르치다가 왔기 때문에 사실 한국교회의 독특한 분위기는 잘 몰랐었죠. 1990년에 들어와서부터 국내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고 있죠."


-한국에 돌아와서는 신앙생활에 적응이 되시던가요.


"예, 별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교회에 가고, 제가 전도해서 아버지께서 믿음을 가진 상태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이 개인의 삶에 있어서는 중요한 일들로 기억이 됩니다. 미국에서 3년 가르치면서 전문가로서 철저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내가 국제정치학을 학생들에게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쏟아야 할 노력이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하다보니까 그런 생활을 하면서 신앙적인 측면에서 나름대로 잘 조화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엔 학생들의 순수한 믿음을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죠. 그게 낙중에 하납니다. 어떤 학생은 1년 동안 풀타임으로 정신지체 노인들을 돕다가 오는 것을 봤습니다. 굉장히 놀라운 신앙을 가진 학생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제가 배우죠."


-살아오면서 신앙이 절실하게 작용한 적은 없었나요.


"정부에 들어가서 일을 할 때(2003년 2월~2004년 1월), 항상 지혜가 부족하니까 지혜를 달라고 기도를 하면서도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특히 후반부에 어려웠죠. 2003년은 지금보다 이념갈등이 더 심했습니다. 그것이 실무를 담당하는 입장에서 쉽지 않은 상황이었죠. 정치적인 갈등 관계를 어떻게 해결하고 마음속에서 정리해 낼 것인가 하는 그런 부분들이 중요한 과제가 됐던 것 같아요. 그만두고 나와서 책을 통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나를 보면서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아니면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죠. 사람들이 강한 이념체계로 무장됐을 때 상대방의 이야기는 용서가 안 되는 것이니까요. 이념과 이념이 부딪히는 장에서 목표를 이루려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런 상황에서 목표를 달성하려면 특별한 지혜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자신의 생각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전제에서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때 한국이 국내적으로 여러 분야에서 개혁을 해나가고 탈냉전 상황에서 남북관계를 진전시켜나가려면) 외교관계 특히 한미관계를 안정시켜야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일했습니다. 여러 가지 반발과 반대를 어떻게 설득하고 그들의 마음을 사면서 일을 해 가는가가 쉽지 않으니까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되더라고요. 저에게 공부하는 계기나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때가 정부 내에서도 이념 갈등이 심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념 갈등을 풀어 가는데 신앙이 영향력을 가질 여지가 있을까요. 그들 중에서도 기독인이 있잖아요. 정책으로 부딪칠 때 신앙적인 갈등을 거친다면 접점을 가질 여지는 없을까요.


"포용이나 관용의 문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만일 기독교적 문화가 뿌리내려 있다면 좀더 쉬울 것으로 봅니다.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접점을 만들어 가는 분위기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한데요. 그래야 정책 문제를 놓고 타협의 여지가 생기곤 하는데, 현실에서는 그런 여지가 크게 보이지는 않더라고요. 살벌한 투쟁의 터가 바로 정치가 아닌가하고 생각되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신앙이 작용할 여지가 많지는 않겠네요. 갈등을 화해하는 원칙에 사람들이 다 동의를 해야 할 텐데요. 이라크 파병문제가 있을 때, 기독교 내에서도 찬반논란이 있었는데요. 파병이 옳은가 그른가를 놓고 갈등이 있을 때 결정하는 원칙의 배경이 있을까요?


"국제정치에서, 특히 한국의 상황에서 중요한 덕목은 ‘신중함(prudence)’이라는 개념입니다. 외교 전략을 선택할 때 하나의 정책이 신중하냐 아니냐에 따라서 수천만 명의 운명이 왔다갔다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철저하게 계산을 해야 하는 겁니다. 현안을 어떻게 처리할까를 두고 판단을 할 때 냉정하게 계산을 해서 투입 비용에 비해 나타나는 이득이 많은 것으로 결정을 해야 한다는 거죠."


"예레미아서를 보면, 이스라엘이 바벨론한테 공격을 받을 때 예레미아 선지자가 이집트 쪽으로 가지 말라고 하거든요. 그것이 신중함의 예입니다. 그런 결정을 내릴 때 문제가 되는 것이 감정이거든요. 그럴 때 감정적 요소를 배제하고 차가운 계산을 하는 것이 신중함의 덕목이라고 보는 거죠. 우리 민족이 역사적으로 고난을 받아왔기 때문에 한이 맺혀 있습니다. 한이라는 감정을 누르고 컴퓨터로 계산하듯 계산을 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정책 결정이죠. 그리고 그 선택 앞에 국민들이 단합을 해야 하는데..."


"요즘에 감정적인 민족주의 분위기. 걱정을 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외교전략적 선택을 할 때 미국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일본과 중국, 러시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관계를 설정을 해야 할 것인가. 계산을 하고 따져보고 지혜롭게 해야 한다. 감정적인 요소가 개입이 되면 판단이 흐려지니까 그런 부분에서 상당히 신중함이 중요한 덕목이라는 생각을 하죠."


-용미론에 가깝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미국을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자주냐 동맹이냐, 친미냐 반미냐 용미냐의 문제라기보다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개성에 가서 북한 사람들을 보니까 키가 15센티 정도 작고 골상이 바뀌었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이 안 좋았는데 하루라도 빨리 그들을 살리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가 현실적인 문제거든요. 그 사람들을 중국한테 맡길 것이냐 서방 자본에 의지할 것이냐를 놓고 접근하면,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내서 한국뿐 아니라 서방과 동반 포용을 해야 하는 것이죠. 그렇게 하려면 미국을 우리 편으로 적극 끌어내서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논리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막연한 개념으로서의 친미 반미가 아니라 현실 속에 살아있는 북한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 것이냐입니다. 북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중요하고, 현실을 진단했다면 냉정하고 차갑게 계산을 하는 것이 고통을 받는 북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죠."


-정책을 판단할 때 현실의 논리로 보는 것과 당위론의 입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갈등이 현실에서는 첨예하게 나타날 수 있을 겁니다. 미묘한 경우 당위론도 서로 다르게 나타나 따지기 힘들 수 있을 건데요, 정책 담장자로 계실 때에 현실론과 당위론 사이에서 조화를 고민해 본적은 없었습니까?


기독교 윤리적 관점과 현실세계를 조화할 수 있는 좋은 예가 동북아시아의 민족주의의 문제입니다. 중국과 한국, 일본에서 민족주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냉전이후 더욱 강화되고 있는데, 그게 현실이라고 보거든요. 기독교 윤리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한국이 똑같이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대응할 경우 도덕적 우위를 차지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성경적인 입장에서 사랑과 화평의 메시지와 같이 국제사회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치에 기반 한다면,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설 뿐 아니라 설득력 있게 우리 입장을 이야기 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에서도 영향을 미치니까 현실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기독교 윤리와 현실세계가 충돌하는 측면도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둘을 서로 긴밀히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가 그런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분명히 이야기할 부분이기는 하지만 정부쪽에서 발언권을 획득하지 못한 면도 있었고요.


"인권 문제는 성경적으로도 보편적이고 중요한 가치거든요. 그 부분에서 한국은 화해 포용정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특수성이 있다고 봅니다. 미국의 상하원 의원을 만나보면 보편적인 가치를 상당히 강조하면서 왜 한국 정부가 인권문제에 소극적이냐는 말을 하는데, 어떤 측면에서 그들에게 허점이 있거든요. 동구권 공산주의 사회의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헬싱키협약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시간이 지나면서 인권 상황을 증진시킬 수 있게 됐죠. 중요한 것은 소련과 미국이 데탕트 무드가 있는 위에 인권 문제에 대한 압박이 그런 결과를 거둔 것이거든요. 똑같은 논리로 미국이 북한을 포용하지 않고 압박만 하는 인권 정책은 그런 정신과 맞지 않다. 인권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연계가 중요하거든요. 문화적·사회적 연계와 신뢰가 중요하고 이를 매개로 인권 증진을 해야 하는데, 그 부분은 빼고 외부에서 조이기만 시도하니까 효과보다 반작용이 크지 않나하는 생각을 합니다. 한편으론 한국의 입장에서 포용 정책을 추구해 가지만 그것이 우리 나름대로 확실한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그 원칙은 북을 무조건 포용만 하는 것이 아니라 비공개적인 채널을 활용해서 조용하게 그러나 우리 의사를 확실하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현실과 기독교 윤리가 조화가 될 수 있는 측면은 있다고 봅니다."


-정책 담당자로 고민을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말씀일겁니다. 북한과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라든지 동기가 있으신가요.


"냉전이 끝났다는 것이 중요한 계기입니다. 한반도에서도 언젠가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한반도 문제에 초점을 맞춰서 북한 문제를 공부했었고, 1994년 핵 위기를 거치면서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갈 것이냐에 관심을 기울였죠.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북한이 점진적으로 변화하도록 돕는 것이죠. 그것이 포용정책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급진적인 변화는 위험이 따를 수 있습니다.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변화하는 방향으로 포용정책을 하면서 도와주고 압박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이번 2차 핵위기는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한반도가 탈냉전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몸부림 혹은 진통이랄까요. 아마 이 시기가 지나면 빠른 속도로 한반도 전체상황이 변해갈 겁니다. 이를 준비해야한다는 것이 평화연구원 설립 취지와도 연결됩니다."


"애굽을 벗어나서 가나안으로 가는데 여러 가지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어떤 영적 지침을 가지고 갈 것이냐, 구체적인 대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이냐, 그리고 후세대들에게 어떻게 교육할 것이냐, 목회하시는 분들과 어떻게 그런 생각을 나눌 것이냐와 같은 문제에 대해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평화연구원을 만들자고 논의하고 있습니다."


-평화연구원은 어느 정도 진척이 되었나요.


"11월말까지 설립하기로 하고 거기에 맞춰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남북나눔운동의 연구위원회(고문 이만열, 위원장 윤영관)에서 올 연초부터 싱크탱크를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통일 이후까지 염두에 두신 거죠.


"기독교적인 싱크탱크를 목표로 영적 지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뿐 아니라, 안보·경제·새터민·인권 등 구체적 문제들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하는 연구를 하고, 대안을 제시할 뿐 아니라 담론을 만들어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지향점이 모여야 할 텐데요.


"복음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싱크탱크라는 큰 테두리가 있고, 여호수아서 1장 7절이 지침이 될 겁니다. 여기서 ‘담대하라’는 메시지는 우리가 당하게 될 도전을 해결할 때 숙명론이나 피동적인 자기비하적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12위 경제대국인데 아직도 자칫 19세기 말적인 사고에 젖어서 굉장히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또 역설적으로 자신 없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역량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과소평가해서 비하하는 시각은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라는 말씀이 기독교적인 정신을 실현해 가라는 명령이라고 봅니다. 또 하나는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절충주의는 아닙니다. 결국 화해하고 통일을 꿈꿔나가는데 그런 자세를 가지지 않으면 양쪽을 품어 안아서 한 방향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런 세 가지 기본 원칙에 공감한다면 뜻을 같이하는데 어렵지 않을 겁니다."


-한국교회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뜻에 공감하고 돕겠다고 하는 교회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후원을 하겠다고 서약하신 교회도 있어서 용기를 갖고 있죠.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하셨으면 합니다."


-한국교회에도 이념적 지형이 있고 갈등이 있을 텐데요.


"이념적인 지형에 앞서서 북한의 한 사람 한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사명이 있습니다. 한 인간의 생명에게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은 이념적인 지형에 따른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못 먹고 굶주려서 인종 자체가 달라져버린 구체적 인간에 대한 사랑이랄까요. 그런 관점에서 모든 문제의식이 출발 한다면 공감대가 형성되고 어려움도 자연스럽게 해소되겠지요."


-글쎄요. 한국교회에서 갈등이 워낙 심해서요.


"메시지의 핵심이 뭔지,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 구체적인 그들의 삶에 현실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봐야 할 텐데. 좌냐 우냐와 같은 분류는 마음에 들지 않거든요."


-내년 대선이 되면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을까요.


"복음주의적 싱크탱크를 목표로 하는 거니까 (정치와) 거리를 두면서 초연할 수 있을 겁니다."


-통일을 이슈로 하는 것이 고무적입니다. 평화연구원에서부터 운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 그 자체보다는 한반도 평화가 궁극적인 목표가 될 거라고 봅니다. 북한 동포들이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돕는 방안을 모색하다보면 평화가 중요하고 그러한 맥락에서 통일이라는 문제가 풀리리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원을 출범해서 분석적이고 지적인 작업을 한다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데 좋은 영향을 끼치겠죠."


-구체적 활동도 생각하고 있나요.


"대외적으로 여러 많은 단체들과 교회들과의 네트워킹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노력을 해나갈 겁니다. 서로 교량 역할을 하면서 연합할 수 있는 부분을 강조할 겁니다.


-학생들에게 꽤 인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평소에 학생들에게 강조하시는 말씀은 없으신지요.


"학생들을 만나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약하고 불안해하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니까 스스로 낮게 평가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라. 옆에서 친구가 고시에 붙거나 좋은 회사에 취직한 것에 너무 흔들리지 말고, 호흡을 길게 가지라’고 이야기 합니다. 인생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자기성찰을 하라고 조언합니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호흡을 가지고 살라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사는 것이 모험이죠. 안전한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여러 가지 불안감이 있음에도 뒤로 미뤄놓고,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꾸준히 긴 호흡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런 메시지가 젊은 사람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갈지 모르겠네요. 특히 기독청년들에게 신앙적 사명이 있으니까 더욱 그런 자세로 살았으면 합니다."


진행 / 김형원 편집위원장정리 / 김동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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