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윤영관 교수의 홈페이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관리자 
  나의 유학생활 (199O년 O월 O일, OO신문)

<나의 유학생활>

(199O년 O월 O일, OO신문)


나의 경우 유학생활은 그렇게 환상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장애물 경주를 하는 선수처럼 그때그때 닥쳐오는 도전들을 극복하면서 달려가야만 했던 힘든, 그러나 경쟁에서 이겨냈을 때 진한 승리감으로 보상받는 생활이었다.

국제정치 전공 대학원으로 이름난 워싱턴 디시의 존스홉킨스 대학, 사이스(SAIS)에 석사과정으로 입학한 것은 1981년이었다. 지도교수인 경제학 전공의 피어슨 교수는 그 학교에서 박사학위까지 하고 싶다고 그러니까, "박사과정에 입학하기는 대단히 어렵고, 언어문제를 극복할 수가 있겠느냐"라는 것 이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영어는 쉽지 않았고 좋은 학점을 따기 위해 미국 학생들보다 느린 속도로 네 과목에 주어진 과제를 다 읽기 위해서는 비인간적인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2년 동안 그렇게 하다보니 학점은 미국학생들보다 더 잘받을 수 있었고 박사과정에도 입학할 수 있었다.

그때 만난 지도교수 도란으로부터는 학문적인 면 못지않게 교수로서의 자세도 배울 수 있었다. 학생들이 아무리 부족해도 그 생각을 친절하게 평가해주고 격려해주어 스스로 갖고 있는 가능성을 키워가도록 도와주었다. 국제정치에서 패권국들의 상대적 쇠퇴과정과 해외투자현상을 연계시킨 논문은 외국인에게 친절하지 않던 콜레오 교수의 태도를 백팔십도 돌변시켜 미국사회의 차가운 경쟁논리의 일면을 알게 했다. 백대 일에 가까운 경쟁을 뚫고 캘리포니아대학(데이비스)에 조교수로 채용되어 피어슨 교수에게 인사하러 들렀을 때, 그는 나를 동료교수로 대우해주었고 자기가 갖고 있던 토스타인 베블렌의 책 한권을 내 시각과 유사한점이 있는 책이라고 선물로 주었다.

캘리포니아 대학에서의 생활은 수업준비나 연구 때문에 박사과정보다도 오히려 잠을 더 못 잤고 피아노 연주박사과정을 위해 텍사스 대학으로 떠난 안사람과는 5년 가까운 이산가족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전공분야의 시야를 넓히고 가르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던 귀중한 기회였다. 프린스턴대학으로 연봉을 두 배 받기로 하고 스카웃된 40대 중반의 동료교수는 이사할 때 도와주겠다고 그랬더니 자기는 공부하다보니 결혼도 못했고 그래서 가구도 별로 없다고 사양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미국을 지탱하는 힘이고 저력이구나 하는 충격을 받았다. 가끔 학생들도 그랬다. 펑크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항상 검은색 코트를 입고 다니던 한 여학생은, 내가 요구한 대로 논문을 쓰려고 밤새워가며 네 번이나 수정을 했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연구실에 찾아와 우는 것이었다. 공부 못하는 학생일 것이라는 나의 고정관념을 배반하고 그 여학생의 중간고사 성적을 보니 100여 명 중 최고였다.

어떤 분야에서든 자기가 하는 일에 미쳐서 사는 사람들이 많고 또 그들이 사회적으로 보상받고 사는 사회는 살맛이 나는 사회다. 똑같은 노력을 다른 분야에 쏟으면 학문의 길 못지않게 사회적으로 공헌하고 보상도 받는 길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유학은 권해볼 만하다. 최소한, 한번쯤 자신과 조국의 모습을 객관화시켜 바라볼 수 있고, 한눈팔지 않고 자기 일에 미쳐서 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으며, 또 몇 년 간이나마 그들을 닮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니까.


PREV  복음과 상황 인터뷰 기사 (2006년 10월 26일, 복음과상황)   관리자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AM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