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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한 젊음이 또 다른 젊음에게 (2012/1/27)


(*. 며칠 전 어느 학생으로부터 그가 유럽에서 교환학생 시절 사귀게 된 그곳 친구들에대해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점이 많아 경험을 정리해주기를 부탁했는데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글 보내준 학생에게 고맙게 생각합니다.  2012. 1. 27.)   



지금, 한 젊음이 또 다른 젊음에게



설 끝자락이라 아직까지 귀성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긴 연휴 끝에 대한민국은 다시 저마다의 터전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모두가 직장으로, 가정으로, 학교로 복귀하는 여정 속에서 우리 대학생들도 다시 쌓인 책들이, 혹은 일터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아가며 새해를 위해 또 한번 마음을 다지고 있을 것이다.


나의 이번 신년은 좀 특별하다. 설밑부터 새해 정초까지,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유난히 요란한 여행을 한 탓이다. 여행 도중 생각보다 고요한 한국의 신정을 맞이하며, ‘진짜 설날’을 목전에 두고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분해 하던 친구 둘과 함께였다.


유럽에서 1년 간 공부하고 여행하면서 만나게 된 소중한 인연들 중 두 명이 문득 올 겨울에 한국에 오겠다고 알려왔다. 독일인 친구인 Niklas와 그와 집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들 중 한 명인 스위스인 Pablo. 올해로 25살인 Niklas는 독일 남부 쪽의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있고, 23살인 Pablo는 예술 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있는 친구이다. 예전 독일에서 잠시 머물고 있었을 때에, 한국에 꼭 방문하겠다며 ‘맹세’했던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아시아 어느 곳에도 한 번 와보지 않았던 친구들이 마치 이웃집에 놀러 오듯 가볍게, ‘겨울 휴가는 한국에서’라는 마음으로 온다고 하니 적잖이 재미있긴 했다.


그렇게 2011년의 끝자락에 문득 찾아온 친구 둘과 20여 일이 넘게 한국 사회를 ‘낯 설은 눈으로’ 찾아다녔다. 무작정 오는 기차에 몸을 싣고, 마음에 드는 역에서 멈추고, 무작정 걷고, 머물고 싶은 곳에서 머무는 동안, 이들과 나눈 생각과 대화도 깊어져 갔다. 여전히 나는 그대로의 한국 사회에 있었지만, 이들이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할 때마다, 매우 당연해진 것들에 의문을 품는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나는 어느새 내가 속한 맥락을 낯선 눈으로 냉정하게 보게 되었다. 지금 또 한번의 포인트를 돌아, 혹은 새 출발의 지점에 서서 치열한 젊음을 준비하고 있을 나의 동기들에게, 각자의 힘듦에도 또 한번 용기를 지펴야 할 우리 대학생들에게, 그저 이러한 얼굴의 ‘젊음’도 있음을 조심스럽게 나눠보고 싶다.


Niklas와 Pablo가 나에게 보여주었던 것은, 그들의 깊은 철학적, 예술적 기반과 그것이 자신의 현실적 삶의 모습에서 발현이 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Niklas는 유망한 컴퓨터 공학도로, 지금도 틈틈이 의뢰 받는 앱 디자인 작업을 통해 충분한 생활비를 벌고 있다. 그러나 그는 벌써 자주 받고 있는 기업들로부터의 채용 의뢰를 모두 거절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아직까지 한 군데에 얽매여 있기에는 너무 할 일이 많아서’라고 한다. 그가 직접 만든 개인 명함에는 ‘앱 디자이너’나 애플 사의 이름은 들어가 있지 않고, ‘Photog-rapher’라고 되어 있을 뿐이다. 그의 사진에는 그가 가진 진짜 삶과 젊음의 편린이 들어 있다. 직접 만든 홈페이지에는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독특한 작품 세계가 가득하고, 남미의 사진 잡지에 주요 작가로 실리기도 하였다. 스톡홀름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나는 이 친구에게서 사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예술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배웠었다. 그는 이미 시장에서 수요를 창출하고 있는 자신만의 전문성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은 그의 삶의 어떠한 ‘목적성’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그것에 자만하거나얽매이지 않고, 놓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만의 젊음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Pablo는 스위스인인 아버지와 독일인인 어머니를 두었고, 지금은 독일 남부 Karlsruhe라는 학생 도시에서 Niklas와 공동주택에 함께 살고 있다. 불어를 할 수 있어서 스위스와 독일, 프랑스를 넘나들며 예술 공부를 했고, 회화를 전공하고 있지만 지금은 한창 작업 중인 비디오 아티스트였다. 항상 자신의 비디오 카메라와 조그만 공룡 인형을 들고 다녔는데, 눈에 보이는 것 이면에서 세상을 재발견하는, 그래서 현실의 진짜 의미를 찾아내곤 하던 친구였다. 2층 까페에 앉아 거리를 내려다보다가,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데 화장품 샵 앞에서 광고 표지판을 들고 소리치는 아르바이트생을 오랫동안 지켜 보더니 화장품은 아예 쓰지 않는데도 그에게 다가가 인사하고 샘플을 받아오던 친구였다. Pablo의 눈으로, 이 친구의 카메라 렌즈로 한국 사회를 투시해 볼 때마다 나는 그 낯섦과 자유로움에 커다란비현실감이 들곤 하였다. 내가 속해 있던 맥락을 한 발짝 떨어져서 살펴본다는 것은 그만큼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렇게 끊임없이 현실의 이면을 발견하고,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데에는 그만큼 치열한 현실 의식과 철학의 깊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여행 중에 산더미만큼 지고 있던 배낭에 그들은 여러 권의 책이며 시사지들을 꾸리고 있었고, 조용한 시간이면 어김없이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나름의 판단 하에 신뢰할 수 있는 언론 매체로부터 나라 안팎 뉴스들을 자세히 확인하였고, 시공간에 걸친 수많은 주제들에 대해 통찰력 있는 의견을 내고 귀 기울일 줄 알았다. 음식이든 옷이든 주거공간이든 자신들의 손으로 일구어 내는 것에 익숙하고, 현대사회의 자본주의적 가치에서 최대한 독립적으로 살고자 노력하는 이들이었지만, 그러한 삶의 가치들을 지키는 과정은 현실에 대한 통찰이 기반이 된 것이었다.


독일의 Niklas와 Pablo가 살고 있는 집에서는 12명의 대학생들이 생활을 함께하고 있다. 정원이 갖추어져 있고, 암실과 작업실, 재봉실이 있는 그 집에서 이들은 최대한의 자급 자족과 환경 친화적인 생활을 실천하면서 저마다의 독립적인 젊음을 살아간다. 이 친구들이 입고 있는 옷이며 신발, 가방은 직접 만들거나, 누군가 만들어주었거나, 중고 마켓에서 구한 것들이었고, 수선이 필요할 때나 무언가 고장 났을 때에 직접 고치고 염색하고 수리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친구들의 모습에는 자신만의 정체성과 손길, 함께 한 시간들이 담겨 있다.


그들의 아침 식사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빵이 주식인 만큼 독일에도 좋은 베이커리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매일 대량으로 일정 분량 공급이 되다 보니, 그러한 샵에서는 매일 유통기한이 하루 이틀 남았는데도 빵들이 대거 폐기 처분되는 것이 현실이다. Niklas는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오가는 길에 그러한 베이커리에 들른다. 가게의 뒤편에 산더미만큼 쌓여 있는 그러한 빵들 중 조금의 몫을 아무렇지 않게 자전거에 싣는다. 사실 이번 여행 중 어느 날 영화관에 갔을 때, 한국 팝콘을 맛보고 싶다던 Niklas는 ‘굳이 살 필요 없다’더니 상영이 막 끝난 상영관 앞에 산더미만큼 쌓여 있던 팝콘 상자 중 거의 새 것 하나를 아무렇지 않게 집어 와서 나를 놀라게 하였다. 그렇게 가져온 빵에 커피와 치즈, 아무렇게나 자란 정원의 허브와 야채를 뜯어 와 함께 아침을 먹는다. 구입한 식품들은 모두 유기농 공정무역 인증 제품이었다. 독일 뿐만 아니라 Pablo와 같이 스위스에서 온 친구, 터키에서 온 친구, 재독 한인 교포 등 여러 배경을 가진 친구들이 함께 한 공간이었다. 그들 모두 저마다의 얼굴로 자신들의 젊음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긴긴 여행과 이야기들을 함께 하면서, 이들도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동기’들이었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젊음의 얼굴은 한국 사회의 대부분의 젊음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표현하면 충분할 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우리 대부분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무게에 대하여 자유롭고자 하고 있었다. 성공과 출세, 현실의 연쇄들을 넘어서서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자 하였고, 스스로의 가치를 단련하면서도 아직 젊기에 도전할 수 있는 위험성과 불확실성에 기꺼이 마주하고자 하였다.


이번에 찾아오지는 못했지만, 또 하나의 나의 소중한 친구인 Justine이라는 프랑스 친구가 있었다. 소르본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며 매우 촉망 받던 우수한 학생이었지만, 그녀가 나를 스톡홀름에서 만났을 때에는 빙하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경제학을 공부하다가, 그녀가 소르본에서 접한 경제학 강의가 ‘A라는 사회가 있다고 가정하자.’ ‘B라고 가정하면’ 등 수많은 가정과 모형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 어느 날 회의가 들었다고 했다. 그녀는 경제학이 여전히 재미있었고, 수학 능력도 출중했지만, 그녀가 어느 시점부터 ‘그런데 왜 가정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어떤 교수도 진지하게 응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학부에서 경제학을 그만두고 ‘좀 더 단단하고 실체적인’ 빙하학을 연구하기 위해 사시사철 얼음이 어는 북유럽으로 날아온 것이었다. 지금도 그녀는 산더미만한 백팩을 메고 북유럽의 북쪽과 시베리아를 오가며 열심히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물론 이들에게도 현실이라는 것은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젊음을 짓누르고 있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도 저마다의 삶의 방황이 존재했지만, 그것을 피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깊이로 ‘파도타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리고 그것을 마음껏 만들고, 부수고, 칠할 줄 알고 있었다. 또다시 새로운 출발 앞에 두려워하고 있을, 혹은 힘들어하고 있을 젊음에게.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의 삶의 무게로 불안해하고 있지만, ‘살아 나가는 것’에 매몰되어 ‘삶’을 잊지는 말자. 지금의 젊음을 훗날의 완성을 위해 끼워 맞춰야 하는 블록으로만 생각하지 말자. 젊음이 가진 불안은, 그것이 어디로 정해져 있지 않고 열려 있다는 가능성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나 자신이 한창 미래의 불안으로 힘들었을 때, 한 친구가 해주었던 말이 마음을 어루만져 준 적이 있다. 그것이 지금 나처럼 불안해하고 있을 또 다른 젊은 마음을 일으켜주길 바라며. “I’m happy,
because of the possibilities I h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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