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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칼럼 The Column] "통일을 꼭 해야 하느냐"고 물은 K군에게 (조선일보 2016/5/31)


[朝鮮칼럼 The Column] "통일을 꼭 해야 하느냐"고 물은 K군에게
(조선일보 2016년 5월 31일)


우리 먹고살기도 힘든데 통일 꼭 해야 하냐던 질문
정치·경제적 차원 이상의 정신적·靈的 문제가 통일
자본주의 역사 떠받쳐주는 공동체 의식 가치 잊지 말아야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前 외교부 장관 사진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
           前 외교부 장관


K군,


잘 지내는지? 취직 시험 준비에 고생이 많겠지? 지난번 만났을 때 자네가 던진 질문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네. 솔직히 우리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통일은 꼭 해야 하느냐고.


나는 통일은 단순히 정치나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에 정신적, 영(靈)적인 문제라고 믿네. 사람이 육체와 정신으로 구성된 존재라면 돈으로만 사는 것이 아님도 분명할 것이네. 개인들이 만들어내는 국가나 민족도 마찬가지일 것이네. 물질적으로 잘사는 국가가 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는 통일 이야기만 나오면 비용부터 계산하려 했네. 통일 문제를 돈으로 따지는 이러한 오늘날 세태는 국가나 민족도 역사 속에 살아 움직이는 정신적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 시대가 잊어버렸음을 드러내 주네. 우리는 지금 비정상적이고 파행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지.


물론 경제적으로 계산해도 통일은 큰 이득이 될 것이네. 이제까지 한국은 해양 경제권에 진출해서 이만큼 성공했지만 지금은 탈출구가 필요한 시점이네. 이제 통일이 되면 대륙 경제권으로 진출해서 반도라는 지리적 위치를 딜레마가 아니라 축복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네. 물론 당장은 부담이 좀 오겠지. 그러나 통일 비용을 우리 국민 세금만으로 충당해야 할 거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네. 아마도 한국이 통일된다면 그것 자체만으로 전 세계 뉴스가 되고 투자처를 찾는 수많은 국제 투자가가 몰려들 것이네. 그런데도 세금 좀 더 내고 당분간 고생할 것이니 통일은 싫다고 말한다면, 참 난감하네.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네만, 자네 결혼해 아이를 낳아 길러보게. 고생은 되지만 참 예쁘네. 그런데 요즈음 손자 손녀를 본 내 친구들은 그렇게 이야기하네. 아들딸 낳았을 때와 또 다르다고. 손자 손녀가 얼마나 예쁜지, 자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황홀감이 든다고.


그 예쁜 손자 손녀가, 또 그들의 자손이 통일 한국의 시민으로 국제사회에서 당당하게, 그리고 풍요로운 선진국 시민으로서 살아가게 만들어주는 것이 통일일 것이네. 그래도 죽기 전까지 내가 편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 기회가 왔는데도 통일을 외면했다고 가정해보세. 그들 세대가 조상인 자네 세대에 대해 뭐라고 말할 것 같은가? 혹시 나라 잃은 조상 못지않게 못난 조상이었다고 욕하지 않겠는가?


역사의식이란 별것 아니네. 이게 역사의식이네. 그런데 지금 우리 머릿속에서 역사의식이, 그리고 공동체 의식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네. 오로지 '나'와 내가 살고 있는 '지금'만이 우리 의식 속에 존재하네. 그렇게 만든 것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물신주의(物神主義)라고 보네. 돈이면 전부라는 물신주의가 우리 혼을 빼앗아가고 있는 것 같네. 물론 자네의 조부 세대, 부모 세대는 가난을 이겨내고자 정말 열심히 뛰었네. 그래서 이만큼 먹고살게는 되었네. 그런데 문제는 정작 중요한 것, 근본적인 것을 잊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네. 그리고 그것이 통일을 바라보는 우리 생각 속에 드러나 있다는 것이네.


2012년 1월 6일 자 독일 주간지 슈피겔에 한국 관련 장문 기사가 실렸네. 독일 지도층 인사 20명이 한국을 방문해 사람들을 만나고 느낀 점을 토로했네. 마지막 동독 총리였던 데메지에르가 "한국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돈 많이 드는 통일은 원하지 않아"라고 말하네. 이 말을 받아 동독의 마지막 국방장관이었던 에펠만은 "한국 사람들은 통일 후에도 국경을 통제하려 해. 참, 기가 막혀. 장벽이 무너졌는데 다시 장벽을 쌓으려 하다니"라고 말하네. 2013년 봄 내가 베를린에서 머물 때 만난 한 독일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네. "우리는 우리 세대가 통일의 사명을 감당하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했다"고.


그들과 우리의 차이가 무엇일 것 같은가? 그들은 근본을 잊지 않았고 통일도 그런 관점에서 대응했던 것 같네. 그들은 우리보다 자본주의 역사가 길지만 그것을 든든히 떠받쳐주는 정신적 가치와 공동체 의식이 있었고 돈이 앞선 것이 아니었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네. 나는 그들의 의식 속에 튼튼히 자리 잡고 있는 공동체 의식, 역사의식이 정말 부럽네.


어렵지만 실망하지 말고 열심히 해서 취업에 성공하게. 대학에서 오랫동안 젊은이들과 함께해왔기에 자네의 아픔, 이 시대 청년의 분노를 조금은 이해하네. 그리고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 미안하네. 그러나 진심으로 부탁하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그것을 넘어서는 정말 근본적인 것, 중요한 것들이 있음을 우리 함께 잊지 말고 살아가세.


*원문보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5/30/201605300298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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