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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금융파업과 네덜란드 교훈 (매경 2000/7/11)

거대한 도전 앞에서 제 이익만 챙기겠다고 아우성치다 보면 결국은 다 망한다.  대신 도전의 본질을 파악하고 대화와 희생을 통해 힘을 모으는 국민들은 성공한다.  그런 점에서 유럽의 네덜란드가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97년 네덜란드 총리는 서방선진 7개국(G7) 정상회담에 초대되어 경제적 성공 비결을 소개하고 정상들의 칭찬을 받았다.  특히 네덜란드는 영국 프랑스 독일과 같은 강대국에 둘러 싸여 있고 개방경제를 지향하는 소국이기에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

이 나라 경제도 한때는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문제투성이였다.  2차 대전 후 꾸준한 성장을 보이던 경제가 6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임금, 고실업에 시달렸고 70년대에는 노ㆍ사ㆍ정간의 갈등으로 전국적인 파업의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과다한 복지 지출로 재정적자는 엄청났고, 이는 높은 세금부담, 기업의 수익성 악화, 그리고 고실업을 초래했다.  

결국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었고 그러한 위기상황에서 네덜란드 국민들의 저력이 발휘되었다.  82년에 노ㆍ사ㆍ정간에 이른바 바세나(Wassenaar) 협약이라는 대타협을 도출하여 위기를 극복하게 된 것인데, 그 과정에서 몇 가지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첫째는, 노ㆍ사ㆍ정이 그리고 온 국민이 자기 몫의 고통을 철저하게 나누어 가졌다는 점이다.  노동계는 그 동안의 자동적인 임금상승 요구를 포기하고 임금 동결이라는 고통을 감내했다.  그 결과 84년에서 97년에 이르기까지 13년 동안 단위상품 당 임금비용은 프랑스에서 30%, 독일에서 40% 상승했는데 네덜란드에서는 오히려 1% 감소했다.  이는 당연히 네덜란드 상품의 국제경쟁력으로 연결되었다.

이처럼 노동자들은 임금도 올려 받고 고용도 보장받겠다는, 꿩도 먹고 알도 먹자는 요구는 하지 않았다.  대신 민간기업들은 임금동결에서 오는 수익을 경영인이나 주주의 호주머니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근로시간 단축, 직업훈련 등을 통해 추가적인 고용창출로 연결시켰고, 이로써 젊은 노동자들의 취업기회도 확보되었다.  IMF위기 이후 구조조정과정에서 평행선을 달리기만 했던 우리 노사관계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정부는 세금을 낮추어 기업부담을 줄여주었고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구매력을 유지시켜주었다.  대신 공무원과 사회복지 수혜자들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봉급과 복지혜택을 과감하게 삭감했다.  공공부문, 그리고 사회복지 수혜자인 국민들도 고통을 철저하게 분담한 것이다.

이러한 철저한 고통분담을 전제로 한 대협약이 저실업, 고성장, 저물가, 그리고 높은 경쟁력을 가져왔다.  97년 유럽연합 평균실업률이 11.3%일 때 네덜란드는 6.2%였고, 95년 현재 세계 7위 경쟁력을 자랑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우리 관심을 끄는 대목은 한번 도출된 대협약이 십여 년 이상 일관되게 추진되어왔다는 점이다.  사실 대협약에 입각한 새로운 정책효과는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동안 수많은 저항과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합의가 실천되어 온 것이다.

IMF위기 이후 30년 동안 누적된 모순들을 해결해야되는 상황에서, 2년 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개혁피로증” 운운하는 우리의 조급증이 부끄러울 뿐이다.

또한 이러한 개혁을 주도하는 정치지도자들의 자세도 주목할 만하다.  83년 노조의 지도자로 대협약의 실천을 주도했고 94년 총리에 취임한 사민당 출신 윔 콕(Wim Kok)은 노동자 임금의 동결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혜택과 공무원 봉급의 삭감 등 인기 없는 정책을 엄청난 저항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집행해왔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모든 것들보다 더욱 중요한 교훈은 무엇일까?  네덜란드의 한 고위관료는 이른바 ‘네델랜드 모델’의 핵심이 첫째도 대화, 둘째도 대화, 셋째도 대화라고 지적했다.  아마도 그들에게 대화를 통한 고통분담의 정신이 없었다면 그들의 낮은 땅을 바다로부터 지키고 있는 제방은 이미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우리사회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금융노조 파업 등 노사 분규들은 보다 거시적이고 본질적인 차원에서 한국형 대협약을 요구하고 있다.  70년대 박정희식 개발독재 시대에는 국가가 주도하고 강요했던 강제된 협약이나마 있었고 이것이 고속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박정희 모델이 새로운 국내외 환경에서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난 10여 년을 혼돈 속에서 보냈고 민주적이고 자발적인 새로운 합의모델을 개발하지 못한 것이 우리 문제의 핵심이다.  

경제가 좀 풀린 듯 하자 이제 IMF위기로 인해 억지로 눌려있던 욕구들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노ㆍ사ㆍ정은 서로 손가락질하며 부담 미루기에 여념이 없는데, 경제의 세계화와 현실로 다가선 한반도 탈냉전의 도전들이 코앞에까지 밀려와 있다.  

우리에게 네덜란드는 과연 아득한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인가.

(매일경제, 2000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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