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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實利와 화해의 새 시대 (매경 2000/6/17)
때로는 지루하게 잠자고 있던 역사가 갑자기 살아 움직이며 방향을 트는 것을 목도하는 순간이 있다.  이번의 정상회담도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극진한 환대, 처음으로 접한 그의 웃음과 목소리는 우리 국민들에게 가히 충격이었다.  공동선언이 앞으로 성실하게 이행된다는 전제로 몇 가지 의미를 파악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정상회담의 분위기와 공동선언의 합의 내용은 북한의 대내외 전략이 변화의 급류를 타기 시작했음을 감지하게 만들어 주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 동안 김대중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추진해 온 포용정책을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측이 전면적으로 수용하고 화답해주었다는 점이다.  

남북공동선언 4항의 경제협력을 통해 “민족경제의 균형적인 발전”을 추진한다는 구절은 북측이 우리 정부의 포용정책뿐만 아니라 민족경제공동체 형성이라는 거시적인 목표 자체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였음을 보여준다.  이제 남한경제, 북한경제가 아니라 “민족경제”가 새로운 단위개념으로 등장한 셈이다.  이로써 우리 정부의 포용정책은 대내외적으로 더욱 확고한 정치적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경제협력에 더하여 북측에서 민감하게 생각하는 친척방문단 문제와 우리 쪽에서 민감하게 생각하는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서로 성의를 보여 해결한다면 남북간의 신뢰는 더욱 깊어질 것이고 냉전구조 해체의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공동선언의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하기 위해 당국사이의 대화채널 가동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에 합의했다는 사실은 그 동안 북한이 채택해왔던 대남 정책에 있어서 상당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당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남한정부를 기본적으로는 “미제(美帝)의 앞잡이”로 규정하고 대화 상대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정상회담의 지속에 합의했을 뿐 아니라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여준 예우와 진지함은 이러한 정책의 변화를 감지하게 만든다.
  
특히 그 동안 적(敵)으로 간주해왔던 우리 정부의 수반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극진하게 환대하는 장면들이 북한주민들에게 반복하여 방영되었다는 점은, 명분에서 실리(實利)로 대남 정책의 무게중심이 바뀌고 있지 않다면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다소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처럼 대남 전략뿐만 아니라, 대외전략, 그리고 대내경제정책에서도 실리 추구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방향 선회는 최근 몇 개월 동안 추진해온 적극적인 외교공세 뿐만 아니라 이번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여준 파격적일 정도의 개방적 이미지 구축과 일맥상통한다.  특히 서방사회에서 자신을 은둔자로 평한다는 농담은 의미 심장하다.  좀더 두고보아야 하겠지만, 이제 문제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벗고 규범을 준수하는 국제사회의 정식 구성원이 되겠다는 의지의 일단(一端)일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북ㆍ미, 북ㆍ일 관계의 개선과 수교에 관한 합의도 가속될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측해볼 수 있다.  이들 국가와의 관계 개선에 걸림돌로 작용해왔던 핵, 미사일, 테러지원 문제 등, 정치, 군사적 현안에 대해 북측이 전향적인 자세를 취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전략변화는 북이 과거에는 미국, 일본 등 서방 세계와의 교섭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남북문제는 맨 나중에 풀겠다는 자세를 바꾸었다고 해석해볼 수도 있다.  이는 남북간 관계개선 없이 미국, 일본과의 관계개선에만 집중해왔던 북한의 과거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남북관계 개선을 발판으로 하여 미ㆍ일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이를 통해 북한경제에 대한 서방측의 총체적인 지원을 도출해내겠다는 의도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외전략 하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내부적으로 권위주의적인 발전모델을 추진할 것으로 예측된다.  정치적으로는 이른바 겹겹으로 “모기장”을 치면서 주민들을 엄격하게 통제하되, 경제적으로는 조심스럽게 외자(外資)와 시장요인을 도입하여 경제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선 것 같다.  

이것이 막연한 현상유지나 아니면 러시아 식의 급진개혁보다 합리적인 유일한 대안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북측이 1항의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이나 2항의 통일방안 논의와 같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의 실천에 대해, 특히 그 실천의 완급(緩急)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지가 주목된다.

그 동안 우리 정부가 추진해온 포용정책은 이제 첫 단계의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정부는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공동선언의 세부사항을 실천하는 문제, 미ㆍ일을 비롯한 주변국들을 설득하여 북한 경제난의 궁극적인 해결과 냉전구조 해체를 위해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협력을 도출해 내는 문제 등, 제2 단계의 과제들을 앞에 두고 있다.  

이번의 정상회담은 우리도 이제 우리 문제를 스스로 풀어나가는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매일경제, 2000년 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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