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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론] 일본의 과거, 한국의 미래 (문화 2000/4/26)

엄청나게 빠르게 세계가 변하고 있다.  세계화, 정보화, 유연화 등 변화의 성격을 말해주는 말도 한 둘이 아니다.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려면 개인이든 국가든 스스로 변신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한 때 잘 통했던 사고방식ㆍ제도ㆍ관행도 시간이 흐르고 세계가 변하면 낡은 것이 되고, 그 낡은 것을 고집하면 후진으로 밀리기 마련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나라가 바로 우리 이웃 일본이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만 아니라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발전을 시도하면서 일본의 경험을 상당히 많이 원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경제에 대한 시사점이 대단히 크다.


‘후진정치’가 경제침체 유발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일본 경제는 하버드 대학의 에즈라 보겔 교수가 ‘일본 넘버원’이라는 책을 써 극찬할 정도로 잘 나가는 경제였다.  서방에서는 일본 배우기의 붐이 일다시피 했다.  그런데 그 일본이 1990년 이후 10년간 장기침체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혼미를 거듭해오고 있다.  한 MIT대학 교수가 한국을 ‘아시아의 다음 거인’으로 부르는 책을 써 칭찬했었는데 1997년 말 외환위기를 맞은 것과 비슷하다.    

1993년 38년간 지속된 자민당 일당체제가 무너지고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총리 내각이 들어섰다.  그가 임명한 한 정부위원회의 보고서는 21세기 일본경제에 대한 확실한 청사진을 펴기 위해서는 일본인들이 기존의 경제정책ㆍ경영스타일ㆍ생활기준을 버려야되고, 대대적인 구조 개혁을 추진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러한 구조 개혁은 7년이 지난 지금에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고, 지난 10년은 ‘환멸의 10년’으로 불릴 지경이 되었다.

그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많은 전문가들은 일본 정치에서 찾는다.  정치적 리더십의 공백으로 강력한 개혁정책의 추진이 불가능했고, 급한 사안들도 모두 뒤로 미루는 정치가 지속되어 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규제개혁ㆍ금융개혁ㆍ행정개혁 등 모든 개혁과제들은 정치인들의 애매모호한 약속이었을 뿐 과감하게 실현되지 못했고, 대신 정치인들은 이념과 정책은 없이 파벌 싸움에만 열중했다.  보스톤 컨설팅에 근무하는 호리라는 일본인은 1994년 6월 포천지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총리를 뽑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그 사람의 아이디어나 비전이나 용기가 아니라, 모든 파벌들과 타협을 얼마나 잘해내느냐 하는 점이다.  그러니 어떻게 우리 정부가 우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작년 한 일본인 교수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총리를 거의 동일한 맥락에서 평가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여야 개혁위한 큰정치 펴라
  
결국 6년전 그 사람의 이야기는 영락없이 맞아 떨어졌고, 그 결과 오늘날도 일본경제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 들어 자본투자 등 기업 분위기가 다소 나아졌지만 작년 4ㆍ4분기 경제는 1.4%나 위축되었다.  3주전쯤 한 일본의 화장품회사 사장은 파이낸셜 타임tm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정치는 혼란에 빠질 것이고 정치인들은 모든 것을 뒤로 미룰 것이다.  그들은 해야만 될 결정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규제완화나 다른 개혁들은 지연될 것이다.”

과연 이러한 모든 것들이 우리와 관계없는 남의 나라 이야기에 그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1993년 이후 자민당체제의 붕괴와 호소카와 총리 등장이후 7년 동안 일본이 걸은 길을, 총선이 끝난 한국이 지금부터 걷게 되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총선의 결과로 집권당과 국회 다수당이 달라졌기에 교착의 구조는 이미 마련된 셈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이념과 정책에는 관심이 없고, 타협을 일삼으면서 개혁은 힘들다고 미루기만 하면 어찌 될 것인가.  일본사람들은 그래도 타협이나마 잘했는데, 혹시 우리 정치인들은 그것도 잘 못해서 그 동안 추진해온 개혁이고 무엇이고 모든 것이 멈춰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되면 일본과는 달리 자율성이 약한 우리 관료들은 얼마나 흔들리고, 시장경쟁의 규칙은 얼마나 왜곡되고, 도덕적 해이는 얼마나 또 만연할 것인가.  그러다가 혹시 또 1997년 말처럼 되면...  그나마 2년 동안 일관되게 우리가 주도해온, 그래서 오랜만에 민족적 자존심을 되찾게 만든 남북관계는 또 얼마나 흔들리게 될 것인가.  

앞으로 3년,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세월이 잃어버린 세월이 되어버리면 어떡하나.  여야 정치인들은 이러한 국민들의 걱정을 헤아려, 큰 정치를 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니 두 손 모아 기도한다.

(문화일보, 2000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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