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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인터넷혁명과 한국정치 (문화 2000/2/17)

 

‘인터넷 혁명’과 한국정치



 

“어떤 아이디어가 처음에 터무니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면, 그 아이디어는 별 볼일 없는 것이다.”  얼마 전 외국의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이 고객 관리 차원에서 플라스틱 커피 잔을 보내주었는데 거기에 쓰여진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작년에 전공분야의 신간들을 몇 권 주문했었는데 예상치 않은 선물을 보내준 것이다.  그것을 받는 순간, 다시 한번 인터넷 혁명이 가져온 변화의 한가운데 살고 있음을 실감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아무리 책을 많이 사주어도 고맙다는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솔직히 말해 국내서점들보다 더 친근감이 갔고, 그러한 생각을 고객이 갖도록 만든 인터넷시대의 상술을 보고 앞으로 국내 기업들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터무니없었던 것처럼 생각되었던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도 이제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연말이면 제자들로부터도 종이 연하장보다는 음악이 담긴 E메일 연하장이 더 많이 오고, 고등학생이 벤처기업의 사장이 되었다.  인터넷으로 국제전화를 무료로 쓸 수 있는가 하면, 서울에 앉아서 세계 도처의 신문과 텔레비전을 보고, 모스크바 거리의 골목까지 나온 지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획기적인 점은 그러한 생활의 변화 못지 않게 중요한 변화를 우리의 정치 속에서 경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터넷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양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  더 나아가 그 정보를 매체로 서로와 서로를 수평적으로 연결시켜놓는 역할을 하고 있고, 이를 통해 한국정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한국사회에서 정치개혁에 대한 필요성이 강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견고한 성(城)처럼 기성 정치권은 그러한 압력을 물리쳐왔다.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분노했지만 무력감을 느끼면서 허탈에 빠졌었다.  30여 의석을 줄인다고 했다가 그 약속을 번복했을 때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었다. 


낙천명단 홈페이지로 접속


그런데 어느 날 시민단체들이 들고일어났고 분노했던 국민들은 분노했던 만큼이나 그들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한 시민단체가 최초로 자신들이 작성한 공천 부적격자 명단을 홈페이지에 올렸을 때 수만 명이 그 단체의 홈페이지에 접속했다는 사실이다.  시민단체는 언론에 명단공개를 하지 않고도 그들이 의도했던 정치적인 효과를 충분히 거둘 수 있었고, 이것이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이제 인터넷은 신문과 TV에서 제공해주는 정보를 아무런 선택의 여지없이 수동적으로 수용해왔던 개개인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자기들이 원하는 정보를 선택해 나설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더 나아가 그 정보에 기반하여 인터넷을 통한 여론 형성의 장을 만들고 정치적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즉 인터넷은 시민단체나 이익단체들, 그리고 무기력했던 개개인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준 셈이 된 것이다. 

 

특히 인터넷 이용자들이 주로 젊은 층들이고 이들이 기성 정치권에 대해 염증을 느끼면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의미를 갖고있다.  수도권의 경우 1000표 차이로 당락이 좌우될 곳이 많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는 판이니 1000만 명의 인터넷 인구중 일부만이라도 시민단체의 홈페이지를 방문하고, 자기들의 정치적 의사를 인터넷을 통해 확산시키고 실천한다면, 상당한 정치지형의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386세대를 끌어들이겠다고 정당들이 서로 경쟁하고 나섰는데, 그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 바로 한국에서의 인터넷 혁명이라고 보아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지역구도 극복 ‘희망의 싹’

                    

이러한 변화의 추이에서 냉전적 정치문화 해소의 희망을 본다.  1960년대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심화된 지역대립 정치질서는 남북한 냉전대결 구도가 만들어낸 파생적인 유산이었다.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남북간 이데올로기 대립이 심화된 상황에서 정치판은 이념과 정책 중심의 정당구도가 아닌, 인물 중심의 지역정당 구도로 짜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지역대결 정치구도의 해소는 결국 외부적으로는 남북한 냉전구조의 해체로 매카시즘적 정치풍토가 해소되고, 내부적으로는 시민사회 집단과 이익집단이 정치적으로 활성화되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인터넷 혁명은 바로 후자의 요인을 활성화시켰다는 점에서 지역대결을 중심으로 하는 구정치질서의 변혁을 촉진하고 있는 것이다.  올 4월의 총선은 이러한 변화의 힘과 그에 대응하는 저항의 힘이 부딪치는 최초의 대결장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문화일보, 2000년 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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